[인터뷰] (사)부산복지 21 총봉사회 유경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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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부산복지 21 총봉사회 유경지 이사장
  • 김종섭 기자
  • 승인 2020.06.29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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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奉社) 그칠 수 없는 나의 길, 나의 삶

지난 2017년, '제35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부산복지21 총봉사회 유경자 이사장(80)은 장애인체육 활성화 등에 기여한 공로와 장애인체육 한· 일 교류의 공로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70년대 초반부터 남다른 장애인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결실을 맺는 자리였다. 45년간 장애인의 친구로 그 밖에도 소외된 곳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 봉사활동을 펼친 유 이사장의 행적을 통해 '참 봉사'의 의미를 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45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삶의 계기

유경자 이사장은 의지할 곳 없는 청소년들에게 해마다 장학금을 수여하고 독거노인들에게 봉사하며 장애인들에게는 생계비를 마련해주고 있는 (사)부산복지21총봉사회의 초대이사장으로 여태껏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5년 유경자 이사장을 비롯한 자원봉사자 16명이 창단한 '장애복지21봉사단'이 모태가 된 (사)부산복지21총봉사회는 1999년 2월 창립이후, 부산지역 최대의 봉사단체로 성장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1937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해 철도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부산에 정착했던 유경자 이사장의 삶은 '봉사와 헌신'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요약된다.

철도관사에 거주했던 어린 시절, 철도부지에서 노숙하는 장애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챙겨 주었던 그 때부터 봉사 인생은 시작됐다. 관사에 거주하면서 그나마 나았던 자신의 환경을 뒤로하고 열악한 철도부지에 종이집을 짓고 사는 그들이 안타까워 주거시설을 개량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것이 계기가 되어 45년을 사회적 약자를 섬기는 삶을 살게 되었다.

1970년대 해운대역 주변은 오갈 데 없는 빈민들이 닥치는 대로 삶터를 마련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몸올 제대로 굴릴 수 없는 장애인들로서는 생계가 속수무책으로 굶는 일이 다반사였던 것이다. 이 같은 장애인들의 딱한 처지를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움막을 짓도록 부지를 제공하고 필요한 생계를 공급해 주었다. 이 일 후로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장애인들이 도움을 요청해 왔고 유 이사장은 힘이 닿는 대로 그들을 도우며 45년을 하루같이 살게 되었다.

재능있는 장애인 유학도 알선해 줘

유 이사장은 1982년 부산지역 최초로 열린 제1회 장애인 합동결혼식과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부산지회 그리고 대한민국 팔각회, 성지여성회 회장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장애인 단체를 꾸준히 지원했다. 그녀는 부산지역 장애우들에게는 대모(大母)와 같은 존재다. 1986년 한국장애인협회 부산지회 창립을 도우며 초대후원회장을 지냈으며 24년간 12월이면 장애인 자녀 1100여 명에게 장학금을, 어려운 이웃에는 생계비를 지원해왔다. 뿐만 아니라 실력있는 장애인의 유학 뒷바라지는 물론 결혼을 앞둔 중증장애인들에게는 혼주가 되어 가정을 이뤄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복지시설의 아동, 청소년과 장애우 가족 청소년을 1:1로 연결해 청소년들을 바르게 이끌어주는 '사랑의 캠프'도 14년째 개최하고 있다. 더불어 새들원, 성우원, 신애 재활원 등 아동봉사시설 봉사활동에 전념하면서 40년 동안 소록도로 향하는 봉사활동을 쉬어 본 적이 없다.

금은방 '희보당‘이 살린 장애우 부지기수

2020년 5월 기준, 부산지역의 NGO는 수백 개에 이르지만 (사)부산복지21총봉사회 처럼 여성이 주도적으로 설립한 민간단체 중 성공적으로 자립한 봉사단체로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사)부산복지21총봉사회가 부산지역 최고의 봉사단체가 되기까지 유 이사장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때 부산에서가장 유명한 보석점을 운영하던 유 이사장이었지만 '가난은 나랏님도 어쩔 수 없다'는 말처럼 주어도주어도 한정이 없었던 것이다.

이전보다 재정이 열악해 도움이 필요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일일이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장애우들을 보면 안타까워 남몰래 운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의지가 약했다면 손을 놓아도 수십 번, 수백 번을 놓았을 것 입니다. 그러나 장애우들과 아동시설, 노인복지 등에 생계비를 지원하고 장학금을 주는 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45년을 한결같이 약자를 위해 헌신하며 봉사하였지만 유 이사장의 봉사와 섬김은 팔순을 지난 지금도 그치지 못한다. 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인들은 미친 사람 취급하며 도움대신 질시와 시기 섞인 말을 수없이 듣기도 했다.

현제 (사)부산복지21총봉사회에는 부산의 향토기업인 (주)세정, 비락 등과 부산시에서 일정금액을 후원받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을 돕고 싶은 유 이사장의 소망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그럴 때마다 유경자 이사장은 시댁에서 물려받았던 재산과 금은방경영으로 지니고 있던 물건을 팔아 아낌없이 기부했다.

 

45년은 시대를 역류(逆流)하며 살아온 세월

유 이사장을 제대로 아는 주변인들은 그녀가 탁원한 사회운동가로서 갖춰야 할 자질과 소양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여성으로서 일찍이 '대한민국팔각회'에 관여하며 사무부총장, 부총재역, 그리고 성지여성팔각회를 창립, 초대회장을 역임한 것도 그의 탁월한 자질과 역량을 반중하는 것이다. 봉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잠시 얼마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겠지만 자신의 물심양면(物心兩面)을 다 바쳐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천성이 하늘에서 인정이 되어야 할 일이다. 유경자 이사장은 불쌍한 이를 보면 돕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천성이 있어 45년을 한결같이 봉사자로서 살아왔다고 자평한다. 

개인의 인성과 기업의 사회공헌이 핵심가치로 평가받는 바야흐로 복지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나만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식의 천박한 자본주의가 팽팽했던 그 시절, 시대의 가치를 역류해서 사람 본연의 정(情)으로 45년을 장애우와 빈자를 위해 살아온 유경자 이사장을 시대의 큰 어른으로 우리 지역이 배출한 걸출한 여성 사회운동가로 이름을 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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