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연지사를 쓰고 보경 지아스님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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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연지사를 쓰고 보경 지아스님을 읽는다"
  • 황상동 기자
  • 승인 2019.12.31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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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 연지사 첫 방문에 애를 좀 먹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쪽 지리는 여태껏 살면서 처음 오는 곳이라 영 생소하다.  약간은 쌀쌀하다 싶어 옷을 두껍게 입어서 그런지 그다지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마 얘기만 듣던 귀한 스님과의 친견을 앞두고 긴장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암튼 꾸역꾸역 연지사에 당도하니 건장(?)하고 미모(?)를 갖춘 여승 한 분이 환한 미소로 우리 일행을 반긴다. 예를 갖추어야 하는 경건(勁健)의 자리인데도 긴장감은 온데간데없고 첫 만남인데도 감히 기분좋은 미소만 비쳐지는 것 같아 조금은 난처해진다. 아직 구색을 갖추지 않은 사찰 분위기 탓으로 엄숙하지 않아서 그렇지는 않을텐데....

덜 익은 감이 떫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모양새는 늙은 감에 감히 비하리. 나름대로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어색한 절 분위기도 맑음의 향기를 뿜어내면서 신선함 그 자체다. 이 또한 지아스님으로부터 풍기는 형언하기 힘든 정갈스러움 때문인가 싶다.

한 켠에 부처님을 모셔놓은 조촐한 법당에 들어선다. 얼른 부처님께 공경의 삼배를 드린다. 난 항상 그렇다. 기도를 한다든지, 절을 할 때에는 그냥 시셋말로 멘붕 그 자체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그냥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린다.

 

흐린 날씨 때문일까.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의 풍경까지 지아스님 말씀처럼 웅장하면서도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절 지붕 뒷 편에 병풍처럼 우뚝 서있는 키 큰 나무들도 한편으로 필자의 마음을 포근하게 유혹한다. 이래저래 조금은 설레이는 마음을 추수리고 스님을 친견하면서 맛난(?)차와 함께 소담을 나눈다.

‘서울 태생이라 시골냄새를 동경해 막상 이곳에 왔는데도 시골생활도 녹록치 만은 않다’는 스님의 말씀에 필자는‘시골생활이 그냥 전원생활 하듯 맑은 공기나 마시고 편안함을 주는 것 같아 보여도 꼭 아웅다웅 살아가는 각박한 도시생활의 도피처는 아니다’라고 조언을 해준다.

법당 옆 한 쪽 켠에 정좌를 하고 차를 따라주는 지아스님을 보면서 참 몸도 마음도 건강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로 은근히 풍기는 스님의 정갈스러움에 내심 옷매무새에 손길이 간다.
   
사실 이곳은 제대로 절 모양을 갖춘 여느 절과는 다르다.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사찰이라는 흉내만 내고있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절의 형태를 갖추지 못해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스님으로부터 풍기는 작은 위엄이 새삼 필자의 옷매무새를 여미게 한다.

 


'앎은 함께 공유해야 하며, 진정한 지식은 중생의 많은 고뇌를 함께 녹여 그들로 하여금 복(福)을 선사해 주어야 한다'

가끔 던져지는 지아스님의 말씀 속에서 '나를 보면서 내 얘기속에서 중생들아 이 세상의 모든 업보를 씻고 또 씻으라'는 듯 보이는 느낌은 왜일까?
   
비록 덜 꾸며진 사찰에 작은 법당일지라도 자기의 삶을 예지할 수 있고 또 깨울칠 수 있다면 이 또한 성불에 가까움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작금의 시대는 변해도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변화로 인간의 가치 영역 역시 하루가 멀다시피 자꾸만 변해 모두가 이기적이 된다. 이처럼 아픈 변화에 지아스님은 언제나 민초들의 틈바구니에서 안타까워하는 것 같다.

지아스님이 이곳에 온 지는 불과 5개월밖에 되지 않는다고 전한다. 그전에만 해도 광양이나 순천에서 순수봉사단체 홍련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어렵고 불편한 이웃들에게 나눔의 봉사활동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봉사활동도 가진 게 없으면 못 하지 않는냐’는 필자의 질문에 ‘호국불교대학 명리학 교수로 있으면서 공부한 게 역술이라 민초들의 애와 환을 점지하며 또 그들의 아픔까지 달래주니 봉사에 쓰라고 돈을 주더라’며 미소를 짓는다.

스님은 또 '이러한 많은 불쌍하고 가여운 민초들의 아픔을 달래려고 무던히 애를 써도 스님도 부처가 아닌 일개 나약한 스님인지라 도움을 주지 못할 때에는 잠도 못 자고 홀로 눈물을 쏟는다'고 한다. 이런 지하스님의 가슴앓이에 잠깐이나마 적막이 든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얽매임의 집착에 대해 싫어하는 견해를 그대로 실천하고 언제나 민초들의 틈에서 그들의 아픔을 달래고 싶어하는 지아스님의 숱한 업보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필자의 가슴까지 저리게 한다.

그래도 스님은 '지금의 자그마한 시련은 업보의 변제라고 생각하고 윤회해서 다음에는 큰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니 이 또한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며 또 웃는다.

암튼 속가를 떠나 사찰과 연을 맺은 지금의 지아스님을 보면서 생활불교를 그대로 실천하는 민초들의 엄마라고 손을 들어 주고 싶다.

실제로 지아스님은 심리상담사 1급, 가정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호국불교대학 명리학 교수로 후학들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준 분이다. 나아가 스님은 법무부 경북2교구 청송교도소 교화위원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원더우먼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아스님은 불교에서 추구하는 이른바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理下化衆生)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또 이러한 이념의 구현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스님을 누가 감히 역술계의 대가라고 손꼽지 않을 수가 있을까.

실제로 스님과의 상담을 한 민초들 중에는 긴장되고 불안했던 삶으로부터 탈출해 새로운 희망의 의지를 얻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또 이들에게 평안한 삶의 행복을 선사했고, 풀기 어려운 일과 사업, 가정사 등을 역술적으로 풀어 마음의 안식처를 찾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실 삶과 항상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명리학의 가르침은 나름의 깊이를 깨닫는다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더욱이 지아스님과 같은 분은 민초들의 힘든 고뇌를 역술로 풀어가면서도 타 역술가들처럼 현란한 개념들을 사용하지 않는 스님만의 맑음이 있는 것 같다.

지아스님의 철학은 학문적으로 풀면서도 중생들의 아픔을 함께 공유하고, 함께 아파한다는 점이 다르다. 배웠으면서 익히지 않는 개념을 명리학에서는 진정한 앎으로 생각하지 않듯이, 모든 민초들과 공유할 수 없거나 일상생활을 배제한 지식은 진정한 앎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아스님의 가르침은 다르다. 앎은 함께 공유해야 하며, 진정한 지식은 중생의 많은 고뇌를 함께 녹여 그들로 하여금 복(福)을 선사해 주어야 함이란다. 예사롭지 않은 지아스님의 글솜씨도  민초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면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리라.

민초들을 위해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는 아직도 깨닫지 못한 중생을 제도하라는 부처님의 엄함과 포근함이 함께 배여있음을 새삼 느낀다.
  
필자가 친견한 지아스님은 중생들의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이룰 개척자(開拓者)로서의 욕심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민초들과 함께 어울리며 가여운 중생들에게 작으나마 조그마한 선물만 주고 싶어한다.

어쩌면 그러한 스님의 바람이 이 세상을 보듬어 살아가는 가난한 민초들의 욕심과 별반 다를 게 있겠는가. 성불 또 성불하십시오.

*연지암: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용성3길 51

*주지: ㆍ호 :보경   ㆍ법명 :지아  ㆍM : 010-3698-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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