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경에세이》 맑은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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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에세이》 맑은 향기
  • 부경일보
  • 승인 2019.07.0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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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향기

서미숙 / 수필가, 시인 (한국문협 인도네시아지부 회장)

한국에 오면 문학단체 또는 가톨릭 단체를 통해 이런 저런 봉사활동에 참여하는데 주로 어린아이들을 만나게 될 때면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 지금도 내 귓전에 간난 아기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청자 빛 같은 맑은 소리다. 갓난아기의 해맑은 얼굴에서 향기가 난다.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기 위해 내는 아름다운 꽃의 냄새도 이처럼 향기로울까 싶다.

아무런 욕심이나 근심이 없어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주는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일게 하는 순수, 그 자체의 향기다. 아무리 같이 있어도 취하지 않고 싫증이 나지 않는 향기다. 지난달에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문인들과 함께 '문학 나눔 콘서트'로 지체부자유자가 생활하는 학교와 병원, 유아원에 봉사를 간 적이 있다. 그 보람된 시간들을 돌아보니 다시 이곳 자카르타로 돌아와서도 내 생활 곳곳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향기를 맡는다.  

말이 나눔이고 봉사이지 사실은 배우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봉사라는 이름으로 나눔을 주면서 남아서 덜어주는 자선이 아닌 내 마음의 향기를 나누고 진정한 향기를 비어있는 내 마음 한 편에 가득 담아오니 말이다.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다 추락해서 재해를 입었다는 어느 환자를 만났는데 매번 방문할 때마다 그의 평온한 미소에서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그는 사지가 불편한 사람이었다. 어느 것 하나 자기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의 밝은 미소는 언제나 주변을 환하게 비추인다. 오랜 투병생활은 그의 곁에서 모두를 떠나게 만들었다. 형제도 떠나고 친구도 떠났다고 했다. 20여 년의 세월을 그렇게 지냈다고 하니 누군들 옆을 지킬 수 있었겠는가. 그들도 나와 같이 마음껏 움직이고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엘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날 재해환자 병동에 있은 사람에게 친구라는 이가 찾아왔다. 그 친구는 오자마자 분주하게 무언가를 챙기더니 이곳에 있는 친구를 목욕시켜주기 위해 멀리서 왔다는 것이다. 차를 여섯 시간이나 타고 새벽부터 달려왔다고 한다. 움직이는 모습으로 보아 자신의 몸도 그렇게 성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벽에 매달아 놓은 줄을 의지해 겨우 상반신을 일으킨 친구환자는 "뭐 할라고 왔노" 미안해서인지 퉁명스러운 경상도 사투리로 한마디를 던진다. 그러면서도 얼굴엔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화사한 기색이 돈다.

"니 볼라고 왔제." 친구는 웃음으로 받아 넘기고는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친구를 휠체어에 옮긴 뒤 병실 밖으로 밀고 나갔다. 그가 나간 뒷자리에 천사의 모습과 같은 잔영이 맑은 향기로 변하여 내 안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그도 재해를 입어 같은 병원에서 입원을 했었던 것이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그저 같은 병원에서 입원을 했다는 것만으로 자신보다 더 불편한 친구를 돌보는 그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져왔다. 그의 말에서는 크리스탈 살짝 스치는 소리보다 더한 맑음이, 그의 마음에서는 재스민보다 더 은은한 향기가 묻어 나오는 듯했다. 그 어떤 사람의 말씨가 이렇게 맑을 수 있으며 마음에서 배어 나오는 진정한 내음이 이토록 향기로울 수 있으랴.

서로의 조그마한 향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선물인가. 맑고 소중한 향기는 어쩌면 우리 시인들이 쓰는 '시'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함축된 의미의 언어처럼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으니까. 아름다운 한 편의 시처럼 많은 말을 들어내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맑고 아름답게 물들이는 향기로운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도 이 세상은 충분히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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